책 읽어주는 남자
감독: 스티븐 달드리
출연: 랄프 파인즈(마이클), 제넷 하인(브리짓), 데이빗 크로스(어린 마이클), 케이트 윈슬렛(한나)
신촌 이화여대의 ECC 건물에 아트하우스 모모라는 극장이 있다. 100명 남짓 관객수용 규모에, 작고 아담한 독립영화 극장이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음악영화 Once, 그리고 최근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워낭소리와 같은 독립영화들이 이와 같은 독립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영화를 보는 도중에 팝콘을 먹는 소리하나 들리지 않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엔딩크레딧이 모두 올라오기 전까지 영화관의 불이 켜지지 않는다. 음~ 뭔가 좀 깊이 있게 영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
'책 읽어주는 남자'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동명의 소설 영화로 만든 것이다. 책이 출간 될 당시에는 15세 소년의 사랑과 중년의 여성의 사랑을 다룬 것을 두고, '성학대' 논쟁이 붉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두 남녀의 사랑을 중심으로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성 학대 논란에 있다기 보다는 유대인 학살에 대한 피해자가 누구인지에 대한 판단 여부였다고 생각된다. 본 영화에서 나온 여자 주인공 한나는 글을 모르는 문맹이다. 나중에 출소 될 당시에 찾아갈 가족 친지 하나 없는 것 보면, 어렸을 때부터 정상교육 하나 재대로 배운 것이 없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자존심 때문에 문맹임을 밝힐 수 없었던 그녀는 사무직으로 승진을 할 때마다 직장을 옮겨야 했고, 이는 남자 주인공과 헤어지는 원인이 되기도, 또한 나치 수용소의 관리원으로 일하게 된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문맹이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에 대해 배운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관념도 없었던 그녀에게 행동의 판단 기준은 언제나 자신에 주어진 직업의 역할이었다. 유대인 관리원으로서 그녀의 역할은 유대인을 질서 정연하게 관리하는 일이었기에, 수용소 내에 사람이 많아지면 내보냈고 (이들은 학살 장소로 옮겨졌다.), 불탄 교회 안에 300명의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잠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수용소에서 내보낸 이들은 학살되었고, 교회 안에 300명의 유대인들은 모두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15세 소년 마이클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승진으로 다시 직업을 옮겼고, 여전히 그녀를 그리워하던 그는 법대생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지도교수를 동반하고 참석했던 전범 재판에서, 그는 자신이 책을 읽어주었던 그녀가 많은 유대인을 죽게 내몰았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녀가 문맹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가 문맹이라는 사실은 그녀의 죄의 형량을 감할 좋은 구실이었지만, 마이클은 그녀가 문명임을 주장하기를 거부한다. 이는 마이클이 한나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고, 더불어 그 자신도 그녀의 형량이 감해진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그녀에게,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낭독한 서적의 녹음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낸다. 그리고 그녀는 그 테이프를 들으며, 글을 익히고, 마침내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하지만, 그는 여전히 편지에 대한 답장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테이프를 그녀에게 보낼 뿐이다. 나중에 그녀가 보석사면 될 때에, 남자 주인공이 그녀에게 "옛날에 대해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녀에게 "옛날"은 소년이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나눌 때였고, 남자 주인공이 물은 "옛날"은 그녀가 유대인을 관리하고 있을 때였다. 남자는 글을 배운 그녀가, 그녀 자신의 죄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되었는지 물었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에 그녀가 자살을 택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남은 유산을 자신이 관리하던 수용소의 최후의 생존자에게 남겼다는 사실에서, 그녀가 자신의 행했던 일에 대해 죄책감을 인식했다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가 자살을 택한 것이, 과거 유대인 관리직에 대한 잘 못을 글을 깨우침으로 인해서 인식한 것 때문인지, 혹은 남자 주인공의 과거에 대한 뉘우침을 묻는 차가운 질문 때문이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마이클이 한나의 유산을 전해주었던 유대인 최후의 생존자는 아우슈비츠에서 무엇을 배웠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해, "그곳은 대학과 같이 무엇을 배우러 가는 곳이 아니다. 그곳에서 배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했음을 전한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학살된 그녀의 가족들의 사진이 잡힌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데, 유대인을 학살하게 되었던 한나,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가족을 잃어야 했던 생존자 유대인들 모두 아우슈비츠를 만든 폭력의 주체의 희생자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인물의 성격과 그 인물 사이의 관계 그리고 시대적 배경이 함께 맞물려, 너무도 완벽한 필요성을 바탕으로 전개 되었다. 그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또한 뻔한 이야기의 전개로 식상함을 주는 유행 영화들과 달랐다.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관련해서 생각나는 영화: 쉰들러리스트, 더 피아니스트,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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